100A Philosophy
100은 한국어에서 ‘백’이라 발음되며, 두 가지 상징을 지닌다. 하나는 百(백)으로, 옛 한국에서는 이를 ‘온’이라 하여 ‘전부, 모두’를 뜻하며 곧 천지 만물의 이치를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白(백)으로,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상태, 즉 비어 있음과 순수한 시작을
의미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개념이 하나의 발음 속에 공존하며, ‘모든 것’과 ‘아무것도 없음’이라는 양극은 맞닿아 있다.
이는 결국 有(유)와 無(무), 충만과 공허, 생성과 소멸이 서로를 규정하고 완성시키는 원리를 드러내며,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의 근본 질서를 상징한다. 여기에 더해 A는 ‘100’을 대하는 태도(Attitude)이며, 그 속에서 드러나는 미학적 의견과 해답(Answer)을 뜻한다.
따라서 100A는 천지의 이치를 담은 순수성 ‘100’을 마주하는 태도와 해석을 통해 확장되는 사유의 기록이자 체현을 의미한다. 이 철학은 100A의 디자인을 관통하는 근원적 질서이자, 모든 작업을 이끄는 정신적 토대가 된다.
100A Manifestation
2016년 설립된 100A는 건축과 공간, 브랜딩과 제품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작업을
통해 기억의 표상을 기록하는 브랜드다. 공간에 스며든 이야기와 사람들의 삶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디자인이라는 언어로 번역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모든 것’과 ‘아무것도 없음’이 맞닿는 지점을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아, 태도를 세우고 미학적 의견을 정제하며, 공간·사물·사람·세상의 미묘한 관계를 탐구한다. 이러한 탐구와
소통의 흔적은 단순한 형태를 넘어, 사유와 태도가 보다 넓은 질서 속에서 체현되는 기록이 된다. 100A는 곧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응축한 철학이며, 이것이 바로 100A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본질이자 정신이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100A는 세계 무대에서 그 가치를 증명해왔다.
Red Dot Design Award, iF Design Award, Good Design Award, A’ Design Award, ICONIC Design Award를 비롯해 Asia Design Prize, Kosid Golden Scale Award, Korea Interior Design Best Award, Hidden Architects, Japan International Design Pioneer Award 등 국내외 주요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많은
수상 실적을 거두며 국제적 위상을 확립해왔다.
도시의 속도는 인간의 내면보다 먼저 반응하게 만들고, 바깥의 규율은 종종 존재를 객체로 환원시킨다. 이 의원의 진입부는 그 환원을 잠시 중지시키며, 주체가 다시 자기 속도에 대한 권리를 회복하는 첫 장면이다. 협소한 어둠과 바닥의 자갈은, 도시의 동선에 종속되었던 몸을 감각적 주체로 복귀시키고, 한 걸음씩 이동할 때마다 존재는 다시 자신에게 소환된다. 이곳에서 걷는 행위는 이동이 아니라 ‘나는 여전히 여기 있다’라는 존재적 선언이다.
공간은 환자를 수용하는 배경이 아니라, 관계의 조건을 설계하는 주체적 장치다. 시선을 맞추는 높이, 밝음이 과시되지 않는 조도, 노출과 은폐가 균형 잡힌 거리는 관계를 기능이 아닌 만남의 윤리로 구성한다. 이 절제된 환대는 사람을 진료의 대상이 아닌, 세계 속에 놓인 하나의 실재로 인정한다.여기서 말하는 ‘세계’는 주체가 타자와 관계 맺을 수 있는 의미의 배경, 즉 ‘나를 포함할 수 있는 자리’이다.
“우리는 슬픔으로 고통받는 이들이마음껏 한탄할 수 있도록 그들을 지지하고 격려해야 하며, 그들의 슬픔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Michel de Montaigne
이 문장은 감상적 표어가 아니라 이 공간을 구성한 윤리적 전제다. 이때 ‘슬픔’은 특정 정서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취약한 마음이 관계 속에서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음을 상징한다. 슬픔을 감추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안정이 치유의 출발점이며, 건축은 그 안정의 구조를 제공한다.
대기 공간에서 사용자는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니다. 벽은 개별자의 심리적 경계를 보호하지만, 경계가 단절되지 않도록 빛은 그 틈을 가로지른다. 그 기다림은 결핍의 시간이 아니라, 감각이 다시 자리를 찾는 존재의 교정 과정이다. 누군가의 시선이 직접 닿지 않아도, 타자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는 간접적 연결 장치이며, 환경심리학적으로 보았을 때 불안의 자기증폭을 완화하고, 관계적 수용성이 회복되는 정서적 안전지대를 구성한다.
진료실로 이어지는 복도에서 벽의 질감은 몸의 실재를 다시 환기하고, 창 너머 풍경은 외부 세계가 여전히 흐른다는 시간의 외부성을 증명한다. 치료는 관계에서 발생하며, 공간은 그 관계가 성립하는 ‘세 번째 존재’다. 환자–의사–공간의 삼각 구도 속에서 신뢰는 우연이 아니라 구조가 된다.** 여기서 ‘세계’는 타자와 다시 접속할 수 있는 가능성을 눈에 보이는 근거로 제시한다.
이 공간은 단일한 감성을 강요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기억과 정서를 품은 재료들—금속의 선명함, 자갈의 불규칙함, 회벽의 물성, 직물과 목재의 낮은 온기—은 충돌하지 않고 정확한 간격 속에서 배열된다. 정신적 회복은 파편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파편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자리를 재배치하는 일이다. 공간은 그 재배치를 형태가 아닌 태도로 구현한다. 이 의원은 처음부터 시각적 미학이 아니라 관계의 심리적 안정과 치료적 효과를 지원하는 환경적 구성을 목표로 했다.
이곳은 감정의 즉각적 안정이나 미적 위로를 약속하지 않는다. 치유는 감정의 진정이 아니라, 세계 속에 다시 놓일 수 있는 존재의 회복이다. 건축은 그 사실을 언어가 아니라 구조로 제시한다. 사용자는 이 공간을 통과한 뒤에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세계에서 제외되지 않았으며, 내 존재는 다시 관계의 좌표를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이 의원의 건축은 그 인식이 일어나기 위한 가장 조용하면서도 단단한 조건으로 존재한다.** 최종적으로 ‘세계’란, ‘나는 여기 속해 있다’는 소속의 감각을 되찾는 자리이다.